20.08.26(수) "죄를 죽이는 중대한 의무는 주로 정서에 대한 지침으로 주어집니다."



"죄는 싸움을 할 때, 정서를 헝클어뜨리고, 헝클어진 정서를 통해 지성을 혼란시킵니다. 지성과 판단은 은혜로 덧입혀져 있으나 만약 죄의 법이 정서를 장악하여 헝클어뜨리면 그곳에 영혼을 계속 공격하기 위한 요새가 마련됩니다. 따라서 죄를 죽이는 중대한 의무는 주로 정서에 대한 지침으로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골3:5) "땅에 있는 지체"는 곧 우리의 정서를 가리킵니다. 왜냐하면 죄는 몸의 외적 부분 속에 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특히 땅에 있는 지체 가운데 죽이도록 제시되고 있는 것 중에 하나인 "탐심"도 아닙니다. 아니, 사실은 은혜가 영혼을 주장하게 된 이후로 죄의 잔재가 주로 자리잡고 있는 거처는 정서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죄의 법이 "우리 지체 속에" 있다고 말하고(롬7:23), 야고보는 죄가 "우리 지체 중에서 싸우고"있다고 말합니다(약4:1). 여기서 지체는 우리의 정서를 말합니다. 그렇다고 죄를 죽이는 일이 정서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은 죄를 죽이지 못한 마음과 삶을 갖고 있으나 겉으로는 훌륭해 보이는 사람들을 날마다 만나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정서를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죄의 법이 어느 한 정서 곧 사랑이나 기쁨이나 두려움과 같은 정서를 지배할 수 있게 되면, 그것을 통해 영혼을 세차게 공격할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죄가 역사해서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게, 즉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갖게 되었습니까? 그렇게 되면 죄는 영혼을 공격하는 데 얼마나 유리한 기회를 갖게 될까요! 아마 죄는 영혼이 아무것도 못하도록, 아무것도 시도하지 못하도록 만들 것입니다. 개인적 및 공적 의무를 준수하지 못하도록 만들 것이 뻔합니다. 죄는 계속 영혼에 타격을 가하고 영혼은 도와 달라고 부르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기도>

죄죽임에 있어서 올바른 정서를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잊지 않고 깨어서 마음을 지키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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