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우리 성은가족이 오늘 함께 묵상할 말씀과 간단해설, 읽을 말씀과 기도제목입니다.
1. 묵상 말씀: 욥11:1~20
간단해설: 소발이 이야기를 꺼내면서, 세 친구들이 욥에게 한 말씀씩을 다 건네고 있습니다. 그의 말은 다른 두 명의 친구들과 어떤 내용이 달랐을까요? 오늘 그의 말을 통해서, 우리도 동일하게 겪는 성도의 고난과 그 의미에 대해 더 깊은 이해와 성찰이 있길 소망합니다.
2절부터 4절까지는 욥이 거침없이 항변하고 탄식하는 모습을 보면서, 소발이 느낀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욥은 친구들 중에 나이가 가장 어렸을 것입니다. 친구들과 욥이 나누는 대화를 지켜보면서, 이제 자신도 대화에 끼여들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네가 말이 많으니 어찌 대답이 없겠느냐?” 라고 하면서, 욥이 너무 많은 말을 한다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말을 많이 하면 허물도 많이 나타나고 실수도 많아집니다. (잠10:19; 13:3; 29:20) 하지만, 욥은 두려움 없이 말을 많이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말을 많이 할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가 당하는 환난과 두려움이 너무 컸기 때문입니다. 소발의 말이 일부 옳은 말이기는 하지만, 욥의 상황을 다 담아내지는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소발은 욥 자신이 의롭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그렇지 않다라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4절) 그러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아느냐 묻습니다. (5,6절) 하나님의 지혜가 얼마나 오묘한지, 사람이 그 지혜를 다 알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광대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지은 죄대로 그 벌을 다 물으시는가? 그렇지 않다! 라고 말씀합니다. (시103:9~11) 만약, 그렇더라면, 우리는 제대로 살아갈 수가 없을 것입니다.
욥은 자신이 정말 의로운 존재라고 하였습니까? 자신에게 뚜렷한 잘못이 없다고 말하였을 뿐, 자신의 의로움을 주장하지는 않았습니다. (욥9:28~31) 다만 내가 고난받고 있는 이 일에 대해, 친구들의 주장처럼, 내가 범죄하여서 고난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힘주어 변론한 것뿐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오늘 소발의 말은, 다른 두 친구들의 경우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욥의 고난에 대해 제대로 해석해 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소발은 말을 많이 하는 것처럼 보였던 욥을 책망하였고, 자신이 알고 있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7절에서 12절까지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제목을 붙여본다면, 하나님은 오묘하신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묘함이라는 뜻은 영어성경에도 “the depths”라고 번역했는데요. “깊은 것”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깊은 뜻을 다 알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모든 일을 아시며 판단하십니다. 사람은 그 분의 계시에 의하여 일부분만 알 뿐이요. 사람은 전능하신 자, 그 분의 뜻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7절) 하나님은 하늘보다 높으시기에, 사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또 하나님은 스올 보다 깊으시기 때문에, 우리가 다 알 수 없고 (8절) 끝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 또는 수평선 보다도 길고 넓으신 분이 하나님이시다라고 말씀합니다. (9절)
이러한, 하나님에 대하여 지식이 있는 사람은 어떻게 행해야 하겠습니까? 모든 일을 “하나님 앞에서” 행하도록, 깨어 있는 삶을 살기 위해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에 대하여 무지한 사람은 말 그대로 어리석은 사람이고 허무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소발은 이러한 사람을 ‘들나귀의 새끼’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허망한 자는 지각이 없나니, 그의 출생이 들나귀 새끼 같으니라” (12절) 들 나귀는 잘 다루기가 힘든 짐승인데, 게다가, 들 나귀 새끼라고 하니, 얼마나 다루기 힘든 동물이겠습니까? ‘길들여지지 않는 난폭성’이 그 짐승에게 있는데, 사실 소발은 욥을 그와 같이 빗대어 말하며, 욥을 정죄하고 있는 것입니다.
소발은 그가 가진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욥을 위로하기는커녕 욥을 정죄하였고 욥이 회개하기를 독촉하고 있습니다. 소발은 욥이 범죄하였음을 전제하며, 철저히 회개할 것을 말합니다. “네가 마음을 바로 정하고” “주를 향하여 손을 들 때에” “네 손에 죄악이 있거든 멀리 버리라” “불의가 네 장막에 거하지 못하게 하라” (13,14절) 라고 하였습니다. 참된 회개는 손을 들어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라고 말로만 고백하는 차원을 넘어서 “죄에서 돌이키는 데”까지 나아가야 하며, 악은 모양이라도 멀리해야 할 것입니다. 죄악을 멀리하고 심지어 장막에 거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소발은, 철저한 회개가 있은 후에, 하나님이 회복하게 하시는 은혜가 있다고 말합니다. (15~19절) 현재 고난 가운데 욥이 모든 환난을 이기고 소망가운데 살아갈 수 있음을 말해주었습니다. 욥의 고난의 상황을 뒤집을 말한, 현재의 고난을 역전시킬 수 있는 소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만, 사실 그가 전해주는 메시지들은 앞의 두 친구들이 전해준 메시지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욥, 네가 죄를 회개하면, 하나님이 사하여 주시고 너의 고난을 말끔히 해결해 주실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이 고통은 계속될 거야!” 철저히, ‘인과 율’에 따른 전통적인 해석방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20절)
고난을 머리로 이해하는 세 친구들의 말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습니다. 욥이 경험하는 고난의 문제를 풀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실 욥도 진행중이기 때문에, 아직 결과를 알지 못합니다.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지금 당하는 고난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직은 잘 모릅니다. 그래서 고난은 신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신비를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신비이시고 하나님의 뜻이 신비이듯이, 이 신비를 다 헤아리는 데에는 사람의 지식과 경험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고난의 신비 역시, 묻고 기도하여서 해결할 수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때는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오묘하시고 신비로운 뜻을 받아들이 것!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럴 때, 성도는 “그 믿음대로 되어지는” 역사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롬 5:3,4을 함께 읽고 마치겠습니다. 환난은 궁국적으로 소망을 이르는 줄 알기에 환난중에도 즐거워하며, 고난의 유익을 누리는, 사랑하는 주의 성도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기도하겠습니다.
2. 읽을 말씀: 욥11:1~22:11
3. 기도 제목
1)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계시를 통해 하나님이 얼마나 오묘한 분이신지 깨달아 알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2) 다 헤아릴 수 없는 고난의 신비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지혜를 주옵시고, 그 믿음대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게 하옵소서.
3) 코로나 19가 오래 지속되는 가운데 변화된 일상을 잘 적응하게 하시며, 주님을 더욱 간절히 찾고 의지하는 온 성도들이 되게 하옵소서.
4) 교회학교 유치부에서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적 예배가운데 풍성한 은혜를 주시고, 주신 말씀에 따라 서로 봉사하며 섬기게 하옵소서.
오늘도 주의 말씀 안에서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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