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우리 성은가족이 오늘 함께 묵상할 말씀과 간단해설, 읽을 말씀과 기도제목입니다.
1. 묵상 말씀: 고전1:1~17
간단해설: 바울이 3차전도 여행시 에베소 두란노 서원에서 2년동안 사역하였고 말기에는 마게도냐 아가야로 가려고 했습니다.(행19:21;고전16:5;행20:1~3) 대신에 먼저 디모데와 에라스도를 파송하고 바울은 에베소의 소요사건이 그친 후에 마게도냐와 헬라로 가게 되는데. 이러한 정황을 볼 때, 고린도전서는 에베소에서 2년간 목회할 때, A.D.54년경 기록한 것으로 판다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여러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는 교회였습니다. 오늘은 그 중의 한 가지 ‘분쟁’에 대해 사도가 권면합니다. 먼저, 사도는 송신자와 수신자가 누군지, 그들에게 문한하고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1~3절까지 편지를 슨 사람은 사도 바울과 형제 소스테네였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에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이라고 소개합니다. 다른 편지에서도 이렇게 소개하니까 상투적인 말로 보여지기도 하나, 실제 고린도교회가 바울 사도의 사도됨을 인정하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이 말은 매우 의미있는 말이 될 수가 있습니다. 나는 사람의 의지나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되어진 것이라는 사실은 강조하는 것입니다.
편지를 받는 수신인들은 고린도에 있는 성도들, “하나님의 교회” 였습니다. 이들은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 이라고 덧붙여 설명합니다. 사도는 비록 고린도교회가 여러문제를 안고 있는 교회이지만, 주님의 핏값으로 사신 ‘거룩한 교회’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사실만으로 그들을 존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문안하고 축복합니다. (3절) ‘은혜’가 먼저 나오고 ‘평강’ 뒤에 나오는 것은 하나님과 화목케 하는 은혜가 있은 후에 사람은 평강의 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길 소망합니다.
바울은 그들이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고 또 그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문제해결에 바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는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4~9절) 그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내용은 크게 2가지였습니다. 너희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5~6절) 그들안에는 언변, 지식이 풍족하므로 그리스도의 증거가 견고하게 되었습니다. 5절이 ‘원인’이라면, 6절은 그것에 대한 ‘결과’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는 주를 위하고, 복음을 위하여 사용되어져야 합니다.
두 번째 감사는 그들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하였다는 것입니다. (7~9절) 재림의 신앙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자들은 어떠한 복이 있습니까? 그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신실하시기 때문입니다. (9절) 바울은 그들을 생각할 때 항상 감사가 넘쳤습니다. (살전 5:18 우리의 삶에 항상 감사하는 것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 사도바울의 감사에서 하나의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생각할 때, 감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일만으로 감사할 때는 감사의 수가 제한될 수 있지만, 이웃의 일까지 포함한다면, 감사는 그만큼 풍성해질 수가 있을 것입니다.
바울의 감사가 항상 가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웃사랑에서 온 것입니다. 비록 나와 직접적으로 연관성 떨어지고 간접적일지라도 우리와 연관되어 함께 기도했던 사안이라면, 그 일이 잘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격려가 되고 힘이 될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하나님의 주신 은사와 그들의 재림에 대한 소망이 넘쳐나므로 인하여 항상 기도할 때마다 감사하였습니다.
바울은 그들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였고 그 이후에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분쟁이 있었던 사도의 권면은 무엇이었습니까? 바울은 그들에게 같은 말, 같은 마음, 같은 뜻으로 합하라고 권하였습니다. (10절) 바울은 인편으로 그들 내에 분쟁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구체적으로 그 내용은 “나는 누구 누구에게 속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하였습니다. (12절) 해결방안은 어찌하든지 “하나되기 위해” 노력하고, 그러기 위해, “같은 말, 같은 마음, 같은 뜻”으로 합하라! 우리가 서로 다르게 말하는 것은 ‘마음’과 ‘뜻’이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상이 같고 신학이 같으면, 같은 말을 하고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근거와 이유를 제시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13절)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레를 받았느냐?” 만약 그러하다면, 바울에게 속한 사람이 될 거이지만, 그러나, 그렇지 않지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속량하셨으니, 그분 한 분만이 우리의 주가 되시고, 그분만이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주님이 이름으로만 세례를 주시기 때문에 (마28:19) 교회는 그 분에게 속한 것입니다.
실제, 바울 자신은 그리스보와 가이오에는 또 스데바나 집 사람외에는 다른누구에게 세례를 베풀지 않았고 기억에 없다라고까지 하였습니다. (14~16절) 심지어, 내가 보내심을 받은 사명은 세례를 베풀라고 보내심을 받지 않았고 복음을 전하게 하는 것이라 말하며 말과 지혜가로 하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였습니다. (17절) 세례를 무시한 것이 아니라 말씀전하는 것을 자신에게 있어 더 적합한 사명으로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말과 지혜로 하지 않는다.” 는 이 세상의 지혜와 철학사상을 따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이것을 따라 자신의 사상과 지혜를 자랑하면서 나뉘어진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가 이런 저런 이유로 내부에 상처가 많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이며 ‘예수안에서 거룩하여진 교회’라는 사실을 늘 기억하면서 어떠한 이유로 하여서 나뉘어져서는 안되며. 성령게서 하나를 이룬 교회가 그리스도의 말씀안에서 더욱 하나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더욱 힘쓰는 우리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읽을 말씀: 고전1:1~12:11
3. 기도 제목
1)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구속하여 주셔서 주님의 몸을 이루는 한 지체가 되게 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2) 우리의 힘으로는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진리의 성령님께서 함께 해 주셔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를 이루는 거룩한 하나님의 교회되게 하옵소서.
3) 코로나 19가 오래 지속하는 가운데 변화된 일상을 잘 적응하게 하시며 주님을 더욱 간절히 찾고 의지하는 온 성도들이 되게 하옵소서.
4) 유치부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은혜로운 주일 공적예배가 되게 하시고 우리 마음가운데 주의 진리의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오늘도 주의 말씀 안에서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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