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29일 수요일 말씀읽기

샬롬, 우리 성은가족이 오늘 함께 묵상할 말씀과 간단해설, 읽을 말씀과 기도제목입니다.

1. 묵상 말씀: 욥4:12~21

간단해설: 동일한 사건에 대해서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그 해석이 천양지차인 것을 보게 됩니다. 욥이 고난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위로하기 위하여 세 친구들이 서로 약속하고 욥을 찾아왔습니다. (욥2:11) 욥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욥의 고통이 심함을 보고 그들은 일주일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욥의 자기가 태어난 날을 심히 한탄하였을 때, 그 중의 가장 연장자였던 엘리바스가 말을 시작한 것이 욥기 4장입니다. 욥의 세친구들은 그가 당한 고난을 해석하고 욥은 여기에 응수함으로써, 총 8번의 대화의 난타전을 이어가는데, 엘리바스의 해석은 어떠했습니까? 이 해석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엘리바스는 고난에 대하여 철저히 보응의 원리를 따르고 있습니다. 7 절 말씀을 보시면,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라고 하였습니다. “고난을 당하는 것은 욥, 자네가 죄를 지었기 때문이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엘리바스는 당대에, 고난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보응의 원리’는 인과율의 법칙에 따른 것입니다. 원인이 있으면 마땅히 그 원이에 따른 결과가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대로, 좋은 것을 심으면 좋은 것을 거두겠지만, 좋지 않은 것을 심으면, 나쁜 열매를 거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시중에 나와있는 자기 계발서에 나오는 내용들은 하나같이 여기에 충실한 내용들입니다. “어떻게 성공한 삶을 살았는가?” 라고 했을 때, 힘든 상황에서 인내하며 수고와 고통의 눈물이 있었지만, 이를 감수하고 포기하지 않았을 때, 기쁨의 열매를 거둘 수 있었다는 귀중한 원리들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보응의 원리’는 틀린 내용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인과율의 법칙을 세상가운데 심어놓으셨기 때문에, 우리 사회는 이처럼 유지되고 또한 발전해 온 것입니다. 보응의 원리가 적용되지 않는다면, 오늘처럼, 사람들이 열심히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했을 것입니다. 보응의 원리는 이 세상을 해석하는 귀중한 원리입니다. 그러나, 모든 상황에서 다 적용되는 원리일까요? 여기의 의문을 가지게 하는 것이 욥기입니다. ‘보응의 원리’가 실천적이며 보편적인 지혜이며 원리는 맞지만, 그렇지 않은 또 다른 지혜가 있음을 교훈해 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죄가 있어 당하는 고난이 아니라 죄가 없지만,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으로 말미암아, 그의 신앙을 성숙하게 하며 견고하게 하기 위한 고난이 있음을 알게 해 주는 것입니다. (벧전2:19)

엘리바스는 이와같은 고난에 대한 전통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이를 지지하고 변호하기 위해 한가지 예시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12~21절) 엘리바스는 어떤 말씀에 내게 이르고 가느다란 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는 것입니다. 그 때가 언제였습니까? 13절 말씀에, “사람이 깊이 잠들 즈음에”라고 했습니다. 내가 본 환상으로 말미암아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나는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잠을 이루지 못했고 전신이 다 흔들렸습니다.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마치, 누구의 모습과 유사합니까?

창 15장에서 하나님이 아브람과 언약을 맺을 때, 그에게 나타난 모습과 매우 흡사합니다. 창15:12절 말씀을 보면, “해 질 때에 아브람에게 깊은 잠이 임하고 큰 흑암과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더니” 라고 했습니다. 엘리바스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 때에 영이 서 있는데, 그 형체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볼 수 없었고, 눈 앞에서 있었던 것만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바로 그 때에, 조용한 중에 “한 목소리”만, 세미한 소리만 들렸다는 것입니다. (15,16절) 여기, 영은 곧 성령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주시는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사람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고 깨끗할 수가 있겠느냐? (17절) “인간은 완전하지 못하다” 라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하나님앞에 시중을 드는 종들이나 천사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을 믿지 아니하시며, 미련하다고 하시는 것처럼, 욥도 완전한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18절) 하늘의 천사도 미련하다고 하신다면, 인간은 얼마나 미약하고 나약한 존재인가? 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아침에 나서 저녁에 되기 전에 사라져 버리는 무상한 존재 허무한 존재라고 말씀합니다. (19,20절) “장막 줄이 그들에게서 뽑히지 아니하겠느냐?” (21절) 인생은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입니다. ‘장막’은 성경에서 사람의 육체를 비유하고 있지 않습니까? (고후5:1; 벧후 1:3) 그런데 인생은 장막이 영원할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가니, 얼마나 지혜가 없는 삶인가? 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엘리바스는 자신의 특별한 경험을 소개하면서 자신의 말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경험한 것을 예로 들어 설명하는 것은 내가 주장하는 것에 대해, 설득력을 가지는 좋은 방법입니다. 설교에서도 이해를 위해 예화나 또는 적절한 비유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본문을 곡해 할 정도의 지나친 예화는 삼갈 것이지만, 본문의 내용을 바로 볼수 있도록 돕기 위해, 적절한 예화와 비유는 필요한 것입니다.

그가 받은 계시 사건은 “실제 일어난 일”일 수 있겠지만, 그러나 이 사건을 적용할 때에는 언제나 바른 해석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오늘 엘리바스가 해 준 말들은 하나같이 “옳은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깊이 감동을 주는 “위로의 말”은 아니었습니다. 그러했다면, 욥기는 간단한 책으로 마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욥기는 앞으로 7번의 긴 대화가 더 남아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경험한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청소년때, 바른 생활을 한 사람은 오늘날 청소년들의 “일탈행위”에 대하여 제대로 이해하지를 못합니다. 이해가 부족합니다. 내가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엘리바스는 아직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오늘 4장의 그의 마지막 말은 중의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지혜가 없이 죽느니라” 그 역시, 지혜가 부족했습니다. 욥의 고난에는 다 이해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습니다. (요9:3) 그것은 욥의 신앙을 자라게 하고 성숙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언제나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조용히 묻는, 겸손한 신앙인격을 갖춘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2. 읽을 말씀: 욥4:12~7:21

3. 기도 제목

1) 욥기를 통해 고난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넓혀주시니 감사합니다.

2) 성도가 받는 고난에 대해, 우리의 경험으로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주권적인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일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3) 성도들의 직장과 사업장이 활력을 찾고 나라의 경제를 회복시켜 주옵소서

4) 수요기도회 말씀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시고 기도를 사모하고 즐거워하는 복된 시간이 되게 해 주옵소서.

오늘도 주의 말씀 안에서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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